더욱 사랑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골로새서 1:9~14
오늘 손기철장로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고 계셔요.
사랑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체험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결과로써 헌신, 순종, 거룩, 열정, 겸손, 순결을 갖추게 되는 것이지, 내가 노력해서 그것들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계십니다.
오늘 골로새서 말씀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받습니다. 오늘 말씀에 쓰인 동사들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 보세요.
바울이 이렇게 기도한대요. “너희에게… 하나님께서 채우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능하게 하시고, 이르게 하시고, 합당하게 하시고…”
어디 한 곳 너희가 이렇게 하기를 기도한다라고 쓰여있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이러이러하게 하시기를 위해서 기도한대요. 내가 채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채우게 하시고 내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맺게 하시고, 내가 스스로 자라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능하게 하시길 위해서 기도한다는 거예요.
신앙은 하나님께서 하시는대로 내 삶을 내어드리는 거더라고요. 내가 주체가 되서 내가 옳다고 여기는대로 뭔가를 이루기 위해 애를 쓰는 게 아니더라고요. 굉장히 독립적이고 고집스러운 제가 신앙의 언어를 배우는 건 정말 죽었다가 깨어나는 일이였어요. 사실 지금도 쉽지 않아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하심을 믿지 못하면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못합니다. 그 분이 항상 합리적이고 내가 원하는대로만 이끄시는 게 아닌 거 다들 아시잖아요? 그런데 사랑하심을 믿고 내 삶을 내어드리면 하나님께서 헌신, 순종, 거룩, 열정, 겸손, 순결의 열매들을 맺게 하시더라고요. 노력이 전혀 필요치 않다는 게 아니예요. 그 분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면, 그 분을 위해 애를 쓰게 돼요. 사랑받기 위해 애를 쓰는 건 오히려 아버지 마음을 아프시게 한대요. 이미 사랑하시는데 그걸 믿지 못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사랑하시니까 그 사랑에 감사해서 애를 쓰는 것, 그게 바른 길이라는 거죠. “아버지! 이렇게 수고하니까 저를 사랑해 주세요”가 아니고 “아버지 사랑에 너무 감사해서 하게 돼요”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건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랑이 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 분의 사랑은 우리를 방자함이나 합리화, 혹은 게으름으로 이끌지 않으세요. 자주 “사랑하시니까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아”하시며 죄를 합리화하시는 분들 보게 돼요. 십자가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은데 말이죠. 사랑이 우리를 헌신과 순종, 거룩, 열정, 겸손, 순결로 이끄시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어디에 애를 써야 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오직 주님의 사랑을 체험케 해 달라고, 더욱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케 해 달라고 간구하는 일이 최고로 중요한 것 같아요.
오늘은 다들 주의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하시기를 위해서 기도하시자고요. ^^
“우리를 향한 주의 사랑이 충만히 경험되게 하옵소서. 그 사랑안에서 자유케 하시고, 그 사랑안에서 행하게 하소서. 주의 사랑이 우리를 여유롭게 하시고, 우리를 담대하게 하시기를 구합니다. 더욱 사랑으로 채움받고 더욱 사랑케 하시길 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