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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버지의 사랑

JSAJJ 2024. 9. 3. 07:27

예레미야 2:1~8

 

이틀 전에 요한복음을 읽다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부분을 발견했어요.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20:17) 몇 번을 읽다가 엉엉 울었답니다. 내 아버지! 내 아버지! 부르면서요. 오늘 말씀에서도 같은 감동을 받습니다. 예레미야에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과의 시간을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으로 기억하신대요. 광야에서 얼마나 속을 썩였는데, 그래도 그 때를 좋게 기억하심은 그저 하나님의 사랑때문이라 여겨져요. 3절에서도 그 분의 그런 사랑을 읽을 수 있어요.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저는 이 구절이 이렇게 읽혀요. “내 새끼 건들면 가만 안 둔다.”

 

아이들 어렸을 때 참 힘든 순간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 저는 그 시간을 사랑으로만 기억해요. 힘들었던 것은 기억도 안 나요. 하나님이 그러신가봐요. 광야에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그렇게 아파하셨으면서도 그게 기억이 안 나시나봐요. 이스라엘이 말을 안 들을 때 무섭게 매를 드셨으면서도, 이방 민족이 이스라엘을 괴롭힌 것에 대해서는 기억하시고 가만두지 않으셨어요. 자기 백성을 향한 그 분의 편파적인 사랑이 느껴지시나요?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세요. 잘못된 길로 빠지지 말라고요. 그건 미워서 때리는 행위와는 전혀 다른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많이 오해하죠. 나를 깨끗케 하시려고, 사명 주시기 위해 훈련시키시려고 광야를 걷게 하실 때 ? 도대체 왜?”하며 쉽게 원망해요.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세요.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은 4~8절까지 보시다시피, 하나님을 멀리하고 바알에게로 나아갔어요. 훈련시키는 하나님은 싫은 거예요. 물질의 풍요만 약속하는 바알이 휠씬 좋게 여겨지는 거예요. 결국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에게 다시금 매를 드십니다. “내 새끼, 나는 포기 못한다라고 하시는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어요. 사람이 어려울 때는 주님 찾다가 평안해지면 기도 안하게 되더라는 말을요. 저는 그런 얄팍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 스스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려고 부단히 애를 썼는데요, 그게 아니더라고요. 내 열심으로, 내 의를 위해 혹은 벌을 피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거하나님이 그걸 원하시는 게 아니였어요. 유산상속을 기대하면서 부모의 요구를 들어주는 자식 같은 느낌이였던 것 같아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저의 상한 마음이였고, 그 분과의 친밀한 동행, 사랑그런 거였어요.

 

혹시 아픈 시간을 보내고 계시나요? 하나님이 우리를 싫어하셔서 그런 아픔을 허락하시는 게 아니예요.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에도 바알에게 나아가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즉 구원에서 탈락시키지 않으시려고 더 가까이 주께로 이끄시는 시간인 거예요. 우리의 관심은 오직 세상에 있지만, 주의 관심은 영혼의 구원함에 있으세요. 길어봤자 100년을 위해 영원을 파는 어리석은 인간들과 같지 말라고 우리를 붙들고 계세요.

 

오늘 하루 나를 향한 편파적인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셨음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그 분의 사랑을 확증하시려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붙드십니다. 그 사랑이 우리가 헤쳐 나갈 수 없는 환경을 뚫어내게 하실 겁니다. 상한 마음 그대로 주께로 나아가세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마침내 주의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는 날이 우리 앞에 이르게 될 겁니다.

 

사랑의 주님! 실패한 모습 이대로 주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다시금 주의 품에 꼭 안아주세요. 세상을 씩씩하게 살아갈 용기를 주시고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와 사랑을 허락해 주세요. 나를 향한 주의 마음을 알고 담대하게 오늘도 승리하며 살아내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