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의 근원되신 주님께 더 나아갑시다.
예레미야 2:9~19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김양재목사님께서 한 문장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저는 결혼 대신에 인생이라는 말을 넣고 싶습니다.
다들 내 육신의 만족과 기쁨을 찾아 다니니 바알을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하려고 결혼했는데 행복하지 않으니 쉽게 이혼합니다. 행복하려고 예수 믿는데 오히려 더 골치 아픈 문제들을 만나게 되니 쉽게 교회를 등집니다. 행복하려고 아이를 가졌는데 너무 희생을 해야 하니 아이에게 상처주고 학대를 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만사형통, 물질축복… 뭐 이런 것만 쫓으며 행복을 바라면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 파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입장에서는 참 억울했을 거예요. 애굽을 떠나오게 하셨으면 애굽 사람들 보다 더 잘 살게 하셔야지 도대체 끝도 없이 광야를 걷게 하시다니… 이게 1, 2년도 아니고… 만나도, 구름 기둥 불기둥도 하나도 감사치 않았을 겁니다. ‘언제 이런 거 달라고 했나? 홍해를 가르신 그 능력이면 우리를 최강 민족이 되게 하셔서 넓은 영토를 가지고 승승장구하며 다른 이방 민족들을 다스리게 하셔야지, 이게 뭐야?’ 끝까지 그들이 원한 것은 이 땅에서의 행복이였고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거룩(구별된 삶)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완전히 버린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섬겼지요.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아니였어요. 세상 사람하고 똑같이 살면서 헌금 많이 하는 거… 하나님께서 역겹다고 하시면서 누가 성전문을 닫아주면 좋겠다고 하셨잖아요.
하나님 뜻을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은 주변 강대국들에 손을 벌리고 그들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리게 돼요. 하나님께는 그게 상처였을 거예요.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었어요.
내 삶에서 원하는 것이 그저 많은 돈 혹은 형통함, 문제 해결뿐이라면 생수로 찾아와 주시는 주님이 하나도 달갑지 않을 거예요. 제가 그랬어요. ‘이 정도까지 왔으면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지 언제까지 어려운 상황은 두시고 내 맘만 괜찮게 만드시나? 하나님! 그만요. 은혜가 아니고 이 환경 좀 벗어나게 해 주세요’ 제가 그렇게 기도를 했었어요.
광야를 걷게 하시는 주님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드시는 거예요. 어떤 환경 속에서도 깨지지 않고 그 환경을 뒤바꿀 주의 용사로 만들어 가시는 거예요. 내 사명만큼 연단하시는 하나님은 그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주시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를 약재료 삼아 이웃을 살리는 자로 우리를 세워가세요.
그러니 우리 같이 기도해요. 생수의 근원이 되는 그 분을 붙잡는다는 건 기도하며 그 앞에 끊임없이 나아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우리가 만난 환경을 그냥 두시는 거겠어요? 아닌 거 아시잖아요. 주께서 광야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필요를 채우십니다. 하나님이 결국 하실 거예요. 모든 것이 평안한 때가 되어도 죄로 나아가지 않도록 주어진 날들 속에서 더욱 주님과 동행하는 연습 충실히 하시자고요. (다윗도 그 연단 후에 밧세바로 인해 넘어졌던 걸 생각하면 이게 쉬운 일이 아닌 거예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고 바라고 또 바라며 기도로 승리합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두를 축복합니다. ^^